맛있는 이야기

정월 대보름 이야기

구나GUNA 2022. 2. 15. 15:3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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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이야기를 하려하니 긴 한숨이 먼저 나온다.
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잠깐 뒤 돌아 보는 날 같기도 해서다.
내가 어릴때는 남강 다리밑에 집시(거지)가 참 많이 살고 있었다.
우리집은 시내이고 다리에서 가까워 아침때 저녁때마다 거지들이
집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.
우리집 상 물리는 소리 나면 대문 밖에서 소리를 한다.
밥 달라고 소리 치면 영락없이 내가 들고 나가야 한다.
아무도 상종을 안 하고 싶어 하니까~제일 만만한것이 나 였으니까...
엄마 부름에 대답 안하면 큰소리가 나니까 어쩔수 없이 내가 나가야 했다.
양푼이에 밥이랑 먹다 남은 반찬을 들고 나가면 꼭 거지가 한소리 한다.
'밥 더 줘"
'~으잉~~``듣기 싫은 소리에 밥 쏟아 주고는 뒤도 안 돌아 보고 뛰어
들어 오면서 눈물을 훔친다. 왜 하필 나였을까...

이 거지들이 정월 대보름날은 새벽5시면 깜깜한 시간인데 집앞에서 엄마를 부른다.
대보름은 새벽 밥을 지어 찿아오는 거지란 거지한테는 제다 밥과 김치를 넉넉히
챙겨 줬다.
이 기억은 내가 자라 오면서 쭈욱 봐 왔든것 같다.
내가 다 자란 뒤에도 거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.
언제부터인가 거지들이 사라지기 시작 하더니 없어져 갔다.

그 후 시집이라고 서울로 왔는데, 난 나대로 보름이라고 나도 집에서 보고 배운게
있으니까 잘 해 볼라고 보름날 시장을 나갔는데, 시장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.
오마야~ 서울은 서울인가벼. 서울 사람은 정월 대보름날도 안 해 먹고 사나 ..
우째 시장에 아무것도 안 보이냐...경남 촌색시가 사투리로 물어 보면 제대로
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흉내내는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물어도 못 보고..
그렇다고 내가 서울말 할 줄도 모르고.. 시장만 자꾸 돌고 돌면 눈치 빠른 아줌시가
내게 말을 먼저 건다.
"학생 뭐 사러 왔어?" 헐~난 새색시인데.. 나물요. "보름나물?" 예. 아주 짧게 대답 해야
한다. 촌티가 줄줄 나니까..
"나물은 어제 와야지 오늘 오면 없어"
"와 예?" "오늘이 보름 아이미꺼?" 오마야 고마 사투리 쏟아 내고 말았다.
아줌머니 한참 웃으시며 학생 보름나물을 어제 해 먹지 누가 보름날에 하냐 하신다.
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.
보름은 오늘인데 우째 보름 나물을 열나흗날 해 먹는지~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죽겠다.

내 나름 생각인데..
서울 사람들은 다들 직장 다니고 바쁘니까 보름 아침에 해 먹을 시간이 안되니까
열나흗날 저녁에 했어 보름날 아침까지 먹는게 정답일것 같은 생각이다. ㅎㅎㅎㅎ

엄마한테 전화했어 서울엔 열나흗날 저녁에 나물이고 밥을 해 먹고 치운다네.
그래서 시장에 아무것도 없다.......
귀청이 따깝도록 연설을 들어야 한다.
실생활 교육? 잔소리? 다 듣고 나면 귀가 멍멍 해진다.
보름밥도 못 해 먹고 교육은 한참 듣고..
어디 아는 사람이 있어 한그릇 얻어 먹을 때도 없고..
옛날 거지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.

이리하여
내 나름 방식을 만들었다.
보름나물은 열나흗날에 해 먹고,
보름밥은 보름날 아침에 해 먹는 걸로..
잘 짜여진 방식이 지금까지 쭈욱~지켜 나오고 있다.

오늘 아침에도 보름밥을 지어 옆집에 드리고,
작은여보 친구집에도 드렸다.
난 엄마처럼 엄청난 밥을 지어 막 나눠 줄 수가 없다. 내가 할 수 있는
능력의 한계치가 있으니까.

또 내 혼자 중얼거린다.
서울사람은 보름밥도 안 해 먹는것 같다.
우째 민숭민숭하냐.
ㅎㅎ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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